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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하는 손[이은화의 미술시간]〈420〉

낡고 빛바랜 도시의 골목길, 한 남자가 서서 누군가를 향해 격렬하게 손가락질하고 있다. 쭉 뻗은 한 손은 정면을, 다른 손은 바깥을 향한다. 크게 벌린 입과 일그러진 미간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며 그의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쿠르트 크베르너가 1931년에 그린 ‘선동가’(사진)는 바이마르공화국 말기 독일 사회의 불안과 긴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독일은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실업과 빈곤이 일상을 잠식하던 절망의 시기였다. 거리마다 정치적 선동과 좌우 이념의 충돌이 난무했다. 크베르너는 현실

동아일보
2026년 4월 29일·1분 소요
선동하는 손[이은화의 미술시간]〈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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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빛바랜 도시의 골목길, 한 남자가 서서 누군가를 향해 격렬하게 손가락질하고 있다. 쭉 뻗은 한 손은 정면을, 다른 손은 바깥을 향한다. 크게 벌린 입과 일그러진 미간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며 그의 손가락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쿠르트 크베르너가 1931년에 그린 ‘선동가’(사진)는 바이마르공화국 말기 독일 사회의 불안과 긴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독일은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실업과 빈곤이 일상을 잠식하던 절망의 시기였다. 거리마다 정치적 선동과 좌우 이념의 충돌이 난무했다. 크베르너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냉정하게 폭로하는 신즉물주의의 시선으로 자신이 속한 시대를 기록했다. 그림 속 배경에는 인물의 뒤로 낡은 벽과 배수관, 희미하게 이어지는 도시 풍경이 보인다. 이곳은 화려한 혁명의 무대가 아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민중의 비루한 터전이다. 크베르너는 특정 정치인을 묘사하는 대신에 당시 거리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었던 시민 선동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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