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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뛰던 가을동화 가수,이젠 드릴 쥐고 100만 뷰[은퇴 레시피]

아버지는 깡촌 흙수저 출신의 성공한 은행원이었다. 그는 삼남매에게 늘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덕분에 윤창건 씨(53)는 누나와 함께 요즘 말로 ‘선행학습’을 하며 자랐다.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과를 택했다. 부모님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윤 씨의 꿈은 따로 있었다.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덕에 피아노 실력도 제법 됐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에서 예체능 계열로 전과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방향을 틀다 보니 첫 입시에서 보기 좋게

동아일보
2026년 5월 1일·1분 소요
건설현장 뛰던 가을동화 가수,이젠 드릴 쥐고 100만 뷰[은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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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깡촌 흙수저 출신의 성공한 은행원이었다. 그는 삼남매에게 늘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덕분에 윤창건 씨(53)는 누나와 함께 요즘 말로 ‘선행학습’을 하며 자랐다.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과를 택했다. 부모님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윤 씨의 꿈은 따로 있었다.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덕에 피아노 실력도 제법 됐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에서 예체능 계열로 전과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방향을 틀다 보니 첫 입시에서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을 다짐한 스무살의 그는 중앙대 작곡과 교수실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연락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교수를 찾아가 레슨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교수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많이 망설였어요. 저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서 포기하고 돌아섰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돌아와 끝내 노크를 했죠. 어쩌면 그게 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시작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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