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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안창호가 체포된 비극적 우연[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중국 내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이듬해 1월, 이봉창 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자 중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냈다. 자극받은 일본은 중국 상하이에서 자작극을 꾸민 뒤 이를 빌미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른바 ‘상해사변’이다. 일본군은 중국군을 패퇴시킨 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전승기념식 겸 일왕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 행사를 열었다. 당시 상하이는 열강의 조차(租借) 지역인 ‘조계(租界)’로 나뉘어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프랑스 조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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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26년 4월 29일·1분 소요
![1932년 4월 29일 안창호가 체포된 비극적 우연[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uploads/1535858f-a198-4b17-93a2-8fd724168afb.jpg)
Image: 동아일보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후 중국 내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이듬해 1월, 이봉창 의사가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지자 중국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며 찬사를 보냈다. 자극받은 일본은 중국 상하이에서 자작극을 꾸민 뒤 이를 빌미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른바 ‘상해사변’이다. 일본군은 중국군을 패퇴시킨 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전승기념식 겸 일왕 생일을 기념하는 천장절 행사를 열었다. 당시 상하이는 열강의 조차(租借) 지역인 ‘조계(租界)’로 나뉘어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프랑스 조계에 자리 잡았는데, 이는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공공 조계의 치안력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도피처는 곧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의거 때문이었다.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이 행사장 단상을 강타했다.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데이지와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사망했고, 노무라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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